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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08일
얼마전에 박경리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 1926년 경남 통영 ~ 2008년 서울. 영결식이 끝나고 통영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드라마 등을 통해 그의 작품 몇 편을 만났지만 부끄럽게도 어렸을적 <김약국의 딸들> 읽은거 말고는 제대로 본게 없다. <토지>는 시도는 해봤지만 그 방대함과 현실감 넘치는 문체에 압도당해, 내가 글을 읽을때 유지하고자 싶어하는 프레임이 견디질 못했고, 그래서 관뒀다. 그 소설을 읽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일테고 이건 당연히 박경리 선생 탓이 아니다. 이렇듯 박경리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고 작품도 읽어봤다고 하기도 민망한 상태지만 그분의 딸 김영주 강사의 수업은 들어본 적있다. 박경리의 딸, 김지하의 부인. 나는 당연히 이런 식으로 불려본 적이 없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남편으로 불리는건 아마도 괴로운 일일거 같다. 그에게 어떤 의지도, 생각도 없다면 이것이야 말로 축복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하고 싶은게 그리고 계획하는게 있다면, 특히나 박경리, 김지하 같은 호불호를 떠나서 어쨋든 압도적인 명칭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건 시작도 해보기 전에 남들보다 몇 배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격이다. 안타깝게도 수업은, 그 분이 얼마나 한국 미술사를 좋아하는지는 느낄 수 있었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하기야 교양 과목을, 거대한 강의실에서 보는건 강의를 하는 사람이 어지간한 이야기 꾼이 아니라면 흥미롭게 진행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영주 강사는 박경리가 세운 원주 토지문화관 관장일을 하면서 여러 학계 사람들과 함께 청계천 복원을 연구하는 모임에 참가했다. 이명박이 서울 시장에 당선되기 전의 일이다. 그리고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 역사 문화 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물론 여기서 나온 의견들은 청계천 복원이 시작되면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곤 지금은 대통령이 되버린 그 사람은 '수표교와 광교 말고는 가치없는 돌덩어리들'이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때 박경리 선생도 동아일보에 '시가 벌이고 있는 청계천 복원 공사는 조경만 강조했을 뿐이고 역사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용의 기고를 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되버린 그 사람은 이에 대해 '박 선생이 쓴거 같지도 않더라, 요즘 신문에 기사 나는 그대로 썼던데, 아니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썼더라, 그걸 본인이 썼겠냐'라는 도무지 믿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박경리 선생이 이에 분노하시길 바랬고, 청계천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도록 힘을 실어주기를 바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경리 선생은 청계천 복원이 마무리되자 서울시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긴 안목과 문화의 본질을 내다보는 투시력이 없음을 아쉬워 하면서도 어쨋든 복원을 시도하고 마무리지은 50%의 업적을 칭찬해줬다. 이 가족들은 그들의 능력과 영향력을 엉뚱해 보이는 곳에 자주 발휘해 안타까움을 느낀 경우가 많다. 뭐, 나와 같은 생각을 그 분들이 할 필요도 이유도 없고, 내가 속좁은 인간이어서 그렇게 느끼는건가 보다 한다. 나로선 대가의 넓은 마음씨와 보다 더 미래를 내다보려는 초연한 자세를 생각하며 무한한 존경을 보내볼 뿐이다. 조금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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