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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19일
잠정적 유보 상태는 말 그대로 유보됨, 즉 뒤로 미뤄놓음을 뜻한다. 어딘가 반증의 메타 이론이 존재한다는걸 매번 확인하고, 결국은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길 자신없어 하는 인문학도 특유의 소심함은 언제나 내용의 핵심을 뒤로 미뤄놓게 만든다. 오히려 식자들이 이건 확실히 옳은 겁니다라고 말하는 뻔뻔함은 대체 어디서들 나오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건 물론, 대학 다닐때 꽤 잦았던 토론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방어적 전선 쌓기의 못된 버릇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선 디테일을 할 수 있는 한 풍부하게 만든다. 패러다임 사이에는 개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듯, 결론이란건 믿지 않는 자에겐 그 어떤 논거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디테일의 결은 생각과 상상의 모티베이션이 되어준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땐 주제를 아는 것보다 문장의 두께를 느끼는게 더 소중한 경험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초중고 재학 내내 단 한명 마음에 드는 선생이라곤 없었는데, 대학교 다니면서 처음으로 그나마 맘에 드는 선생을 만났다. 내가 다니던 과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명예 교수라는 이름으로 전임 시간 강사급 수당을 받으며 강의하던 이 소심한 학자는 그러나 한 문장을 써놓고 떠오르는 무수한 반증들에 괴로워하다 단 한권의 책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논리 실증주의자다운 그의 precise한 정제된 분석을 보면서 결론은 비록 유보될지 몰라도 플루언트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로선 그 정도의 철저함은 결코 넘볼 수 없는 벽이지만 어쨋든 결론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내 수준에서 배울 수 있었던건 아무리 봐도, 프리사이즈함이 아니라 결론에 대한 소심함 뿐이다. 이곳은 비록 블로그라는 이름의 낙서장 비슷한 곳이지만, 처음에 카테고리를 서서히 완성해가면서 보다시피 기계를 빼놓고는 또는 이걸 집어넣고 생각해도 전반적으로 패션 잡지, 혹은 피쳐 잡지의 체제로 만들어놓았다. 살다보니 방점을 두는 곳이 조금 틀려 숨겨져 있어야할 것이 도드라지기도 하고 순서가 계속 꼬여가기도 한다. 그러나 체제 자체는 매달 한권의 책이 나오듯 완결을 지향하긴 한다. 완성된 텍스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텍스트에 대한 반증으로서의 플럭스에 대한 지지는 언제나 모든걸 유보 상태로 미뤄놓게 만든다. 결국 내용은 자꾸 팩트에 국한되고 하는 일이라고는 계속되는 공사질, 즉 글 고치기다. 그러면서도 이 어설픈 사고의 한계는 끊임없는 잘못된 용어의 사용과 조사의 사용이라는 번뇌를 만들어낸다. 고쳐놓고 보면 단어가 포괄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넘어선걸 깨닫게 된다. 끝이 없다.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남기고 난 허탈함은 집착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일필휘지는 과연 가능한가. ![]() 난 서예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묵죽도에 새겨진 글자 모양들의 리버럴함은 미치도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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